공고문 맨 뒤에 「정품 공급 확약서」가 있어서 그 입찰은 접었어요
공기업 전자조달에 업체등록을 마치고 나서 처음으로 공고를 하나 끝까지 열어봤어요. 사무실에서 쓰는 전산소모품을 1년 동안 단가계약으로 사겠다는 공고였어요. 금액이 1억이 넘었어요. 제가 준비하는 품목이 딱 들어 있어서 한참 들여다봤는데, 결국 이 공고는 접었어요.
막힌 건 제출서류 목록 맨 뒤였어요
자격 요건까지는 괜찮았어요. 나라장터 등록도 돼 있고 업종도 맞았어요. 그런데 계약할 때 낼 서류에 이런 줄이 있었어요.
- 제조사 정품 공급 확약서
- 원제조사 기술지원 확약서
처음에는 제가 뭔가 떼 오면 되는 서류인 줄 알았어요. 알아보니 이건 제가 쓰는 서류가 아니었어요. 프린터나 복사기를 만드는 제조사가 「이 업체에 정품을 공급하겠다」고 써주는 문서예요. 제조사가 아무에게나 써주지 않아요. 총판이나 공식 대리점처럼 제조사와 직접 거래하는 곳이라야 받을 수 있어요.
저는 아직 거래처가 없어요
이제 막 공급처에 문의서를 보내는 단계라 제조사는커녕 중간 도매처와도 거래를 튼 곳이 없어요. 공장에 찾아가서 확약서를 부탁해볼까도 잠깐 생각했는데, 거래 실적도 없는 1인 기업에 제조사가 그런 문서를 써줄 리가 없다는 게 제 감이었어요.
무서운 건 낙찰된 다음이에요
혹시 운 좋게 낙찰이 되더라도 계약 단계에서 이 서류를 못 내면 계약을 이행하지 못한 게 돼요. 공공조달에서는 이게 그냥 끝나지 않아요. 부정당업자 제재라고 해서 일정 기간 입찰 참가 자격이 막힐 수 있어요. 그러면 이 공고 하나가 아니라 제가 준비해 온 다른 조달까지 전부 막혀요.
1억짜리 하나를 욕심내다가 앞으로 들어갈 문을 다 닫을 수 있다는 걸 알고 나니까 미련이 없어졌어요.
그래서 공고를 볼 때 순서를 바꿨어요
- 금액부터 봐요. 큰 단가계약일수록 이런 조건이 붙어 있을 때가 많았어요
- 제출서류에 「확약서」라는 단어가 있는지 찾아봐요
- 제조사가 써줘야 하는 서류가 있으면 그 공고는 바로 넘겨요
제 자리는 따로 있어요
저는 장애인기업이라 금액이 작은 수의계약 쪽이 열려 있어요. 기관이 입찰 없이 업체를 골라 사는 자리라 이런 확약서를 요구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. 큰 공고를 보고 있으면 괜히 조급해지는데, 지금 저한테 맞는 건 작은 계약을 여러 번 해서 실적을 쌓는 거예요. 실적이 쌓이고 거래처가 생기면 그때 다시 큰 공고를 열어볼 생각이에요.
* 이 글은 제 개인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했어요. 제출서류와 제재 기준은 공고와 기관마다 다를 수 있으니 공고문과 입찰유의서를 한 번 더 확인해보시길 권해드려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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