자리를 비워뒀는데 컴퓨터만 없어졌어요
사무실에 책상이 하나 비어 있어요. 원래는 컴퓨터가 놓여 있던 자리예요.
지금은 아무것도 없어요. 치운 지 좀 됐는데 그 자리만 보면 생각이 나서 오늘은 그 이야기를 좀 적어보려고요.
같이 일하면 안 되겠냐고 하더라고요
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이 제 사무실에 왔어요. 와서 한 바퀴 둘러보더니 자기도 여기 와서 같이 일하면 안 되겠냐고 물었어요.
집에 사업자를 내놔서 불편하다고 했어요. 그 말은 저도 알아들었어요. 집에서 일하면 일과 생활이 안 나뉘니까요.
그래서 그러라고 했어요. 오래 생각하지 않았어요.
솔직히 말하면 제가 아쉬웠어요
자리를 내준 게 좋은 마음만은 아니었어요. 제가 덜 심심할 것 같았어요.
혼자 일하면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안 하는 날이 있어요. 문 열고 문 닫는 것도 저 혼자고요. 옆에 누가 앉아서 각자 자기 일 하는 정도만 돼도 하루가 다르겠다 싶었어요.
그러니까 부탁을 들어준 쪽은 저였지만, 기대를 한 쪽도 저였어요.
컴퓨터를 한 대 내보냈어요
자리를 만들려면 책상 하나를 비워야 했어요. 거기 있던 컴퓨터를 아들한테 가져가라고 했어요.
아들이 와서 가져갔어요. 그리고 중고로 팔았더라고요. 저는 나중에 알았어요.
그때는 아무 생각 없었어요. 안 쓰던 거고, 자리는 비워야 했으니까요.
그런데 오지를 않았어요
자리를 비워두고 기다렸는데 온다는 말도 없고 안 온다는 말도 없었어요.
제가 전화를 두 번 했어요. 두 번 다 받지 않았고, 나중에라도 답이 오지 않았어요.
세 번째는 안 걸었어요. 두 번이면 알아들을 만하다고 생각했어요. 그래서 그냥 놔뒀어요. 자리도 그대로 비워둔 채로요.
전화가 잘못 눌렸어요
얼마 전에 다른 사람 번호를 찾다가 그 사람 이름이 잘못 눌렸어요. 바로 끊었는데 부재중 전화로 남았나 봐요.
그러니까 문자가 왔어요. 거두절미하고 한 줄이었어요.
더운데 어떻게 지내세요.
제 전화 두 번에는 답이 없다가, 잘못 눌린 전화 한 통에는 답이 오더라고요.
저도 한 줄만 보냈어요. 난 덥죠. 그게 다예요. 화가 나서 그런 건 아니고, 더 쓸 말이 떠오르지 않았어요.
남은 건 빈 책상이에요
정리하면 이렇게 돼요. 자리를 비워준 사람은 오지 않았고, 자리를 만들려고 내보낸 컴퓨터는 이미 팔려서 없어요.
컴퓨터가 아까운 건 아니에요. 안 쓰던 거였으니까요. 다만 되돌릴 수 없다는 게 좀 그래요. 그 사람은 마음이 바뀌면 그만이지만, 저는 이미 치운 걸 다시 가져다 놓을 수가 없거든요.
그리고 이건 사무실을 옮길까 말까 계산하는 데도 걸려요. 지금 보고 있는 자리는 여기보다 좁거든요. 짐을 줄여야 하나 세어보는데, 그 빈 책상이 자꾸 눈에 들어와요.
이제는 자리부터 비우지 않아요
그 사람을 나쁘게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.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고, 마음이 바뀐 걸 제가 뭐라 할 일도 아니에요.
다만 저는 한 가지가 바뀌었어요. 이제는 말이 오갔다고 해서 먼저 치우지 않아요. 오시는 날 같이 치우면 되니까요. 그때까지는 제 자리를 제 쓰던 대로 둡니다.
그리고 이번에 사무실을 옮기면 누구와도 같이 쓰지 않으려고요. 자리를 나눠 쓰는 건 여기서 끝이에요. 사람이 아쉬워서 벌인 일로 시달리는 것도 이제 그만하려고요.
혼자 일하다 보면 사람이 아쉬워요. 그 마음이 잘못된 건 아닌데, 아쉬운 마음으로 먼저 움직이면 손해는 늘 움직인 쪽이 봐요. 저는 컴퓨터 한 대하고 빈 책상 하나로 그걸 배웠어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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